할인분양, 붉은 덫
- 시인: 박도진
- 작성일: 2026-02-23 16:30
유혹은 늘
가장 다정한 얼굴로 찾아온다
조금 더 낮은 가격,
조금 더 새것의 냄새,
가슴속에 작은 종을 울린다
나는 그 울림을 따라
지역주택조합이라는 늪에 발을 들였다
처음엔 희망으로 가득 찼었다
그러나 바닥에는
서로를 잡아당기는 손들이 있었고
비리의 그림자와
끝나지 않는 갈등이
진흙처럼 발목을 감쌌다
시공사는 법정관리로 들어섰고
시간은 멈춘 듯 흘렀으며
추가 분담금이라는 이름의 돌들이
매일 밤 가슴 위에 하나씩 얹혀졌다
그래도 아파트는 다행히 세워졌다
하늘을 향해 선
그 많은 창문들 중
내 가족의 불빛은 없었다
나는 그 집을 남에게 빌려주고
문밖에서 서성였다
이 집이 나의 것인지, 은행의 것인지
아니면 빚의 긴 그림자인지 알 수 없었다
백여 채의 빈 집들
숨을 멈춘 상가의 셔터들
그리고 길가에 매어 있는
일억 삼천 할인 분양의 붉은 현수막
그 숫자는 시퍼런 칼날처럼
이미 지친 조합원들의 가슴을
소리없이 베어냈다
그제야 나는 알았다
덫은 철로 만든 것이 아니라
달콤한 희망으로 빚어진다는 것을
그 모든 침묵 위에
계절보다 먼저 동백이 피어 있었다
붉은 꽃망울이 속삭인다
너는 아직
완전히 무너지지 않았다고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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가장 다정한 얼굴로 찾아온다
조금 더 낮은 가격,
조금 더 새것의 냄새,
가슴속에 작은 종을 울린다
나는 그 울림을 따라
지역주택조합이라는 늪에 발을 들였다
처음엔 희망으로 가득 찼었다
그러나 바닥에는
서로를 잡아당기는 손들이 있었고
비리의 그림자와
끝나지 않는 갈등이
진흙처럼 발목을 감쌌다
시공사는 법정관리로 들어섰고
시간은 멈춘 듯 흘렀으며
추가 분담금이라는 이름의 돌들이
매일 밤 가슴 위에 하나씩 얹혀졌다
그래도 아파트는 다행히 세워졌다
하늘을 향해 선
그 많은 창문들 중
내 가족의 불빛은 없었다
나는 그 집을 남에게 빌려주고
문밖에서 서성였다
이 집이 나의 것인지, 은행의 것인지
아니면 빚의 긴 그림자인지 알 수 없었다
백여 채의 빈 집들
숨을 멈춘 상가의 셔터들
그리고 길가에 매어 있는
일억 삼천 할인 분양의 붉은 현수막
그 숫자는 시퍼런 칼날처럼
이미 지친 조합원들의 가슴을
소리없이 베어냈다
그제야 나는 알았다
덫은 철로 만든 것이 아니라
달콤한 희망으로 빚어진다는 것을
그 모든 침묵 위에
계절보다 먼저 동백이 피어 있었다
붉은 꽃망울이 속삭인다
너는 아직
완전히 무너지지 않았다고.